정치 정치일반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Ⅱ] (3·④) 달라도 너무 다른 한·미 국정조사

박소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21 16:48

수정 2015.07.21 21:56

3부. 입법시스템, 이젠 품질이 우선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Ⅱ] (3·④) 달라도 너무 다른 한·미 국정조사

■미국, 검찰총장 비리 연루되자 압수수색 나선 유타주 의회

지난 2013년 1월, 존 E 스왈로는 미국 유타주의 검찰총장 겸 법무장관으로 취임했다. 공화당 소속인 스왈로 총장은 우리나라와 달리 유권자의 선거에 의해 뽑힌 선출직이다. 주정부 사법 수장에 오른 스왈로 총장의 성공 가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동이 걸렸다. 같은 주의 재력가인 제레미 존슨이 사업상 비리로 연방정부에 의해 기소되면서 스왈로의 부정행위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자신의 선거에 자금을 지원한 기업 및 대부업체에 특혜를 베풀었다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권력형 비리사건이 그렇듯 스왈로 사건 역시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주정부의 현직 검찰 수장이 연루된 사건에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탓이다. 검찰 수사에 신뢰성이 의심되자 여론이 들끓었다. 같은 해 7월, 마침내 주의회 하원은 검찰 수사와 별개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유타주 의회는 특별위원회의 조사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증인의 증언을 강제할 수 있도록 법률상 소환장을 발부할 권한을 부여하고, 민간 자문위원의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했다. 지방의회의 위원회가 특별검사 수준의 힘과 조직을 갖춘 것이다. 로펌 등 민간영역의 전문가는 실체적 진실의 접근 방향, 자료수집, 증인 선정 및 심문 등에 대해 조언했다. 또 민간 전문가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주의 전문가를 도입하는 등 객관성도 확보했다.

주정부 검찰총장 비리 스캔들의 진상은 특별조사위가 조사한 스왈로의 e메일을 통해 드러났다. 스왈로의 e메일 중 상당수가 검찰 서버에서 삭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특위는 압수수색을 통해 이를 복구했다. 그 결과 총장 임기 전 차장검사 시절부터 직권남용과 대가성 특혜 등 수년간의 검은 거래를 밝혀냈다. 이 같은 조사 과정은 실시간으로 공개돼 신뢰성을 높였다. 결국 스왈로 검찰총장은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같은 해 12월 사임했다. 2015년 7월 현재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 사례는 미국 연방의회의 활약이 아니다. 일개 주정부 하원 의회가 실제 이뤄낸 성과다. 연방체제인 미국과 우리나라의 정치체제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그러나 당리당략적 공방과 버티기로 일관한 끝에 종료하는 우리 국회의 국정감사에 많은 것을 시사하는 사례다.

지난 5월 미국 국무부의 '세계 차세대지도자 초청프로그램'에 참가해 유타주 의회의 특별조사 사례를 현장 탐방한 윤재관 전 새정치민주연합 보좌진협의회(민보협) 회장은 "의회와 행정부 간 권력의 견제"라고 평가했다. 윤 전 회장은 "연방의회도 아닌 주 하원 의회가 검찰 고위직의 비위사건을 조사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힌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라며 "의회가 강력한 조사권한을 가진 동시에 민간부문과 협력하며 객관성을 높인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스왈로 총장의 특별조사를 주도한 유타주 의원들이 같은 공화당 소속이었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윤 전 회장과 함께 유타주 의회 탐방을 진행한 참여연대 장정욱 팀장은 공격과 방어에 치중하는 여야 대립에서 벗어나 행정부 감시라는 국회 본연의 임무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팀장은 "반면 우리 국회의 국정조사는 주요 증인의 채택을 막을 목적으로 물타기 식 증인신청이 비일비재하다. 국회의 권한을 높이는 제도 개선과 함께 입법부 고유 기능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Ⅱ] (3·④) 달라도 너무 다른 한·미 국정조사

■한국, 자원외교도 용두사미 된 대한민국 국회

국회는 지난여름과 올해 초 두 차례 국정조사를 했지만 공통적으로 청문회 한번 열지 못하고 '파행'으로 끝났다. 국회 기관보고에서 정부는 부실한 자료를 제출하거나 성의 없는 답변으로 일관하다가 야권이 반발했고, 국정조사 청문회에 부를 증인 채택을 위한 협상에 시일을 허비하다 협상이 불발되면 자동으로 국정조사가 종료되는 '예정된' 수순을 밟은 것이다.

세월호 국정조사특위는 시작부터 여야 갈등 속에 출범했다. 지난해 5월 29일 국정조사계획서가 채택됐지만 정부 등 기관보고 일정을 합의하는 데만 20여일을 흘려보냈다. 여야는 진도 팽목항과 세월호의 쌍둥이배로 불리는 오하마나호,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 등에도 따로 다녀왔다. 청와대 등 22개 기관에 관한 보고를 지난해 6월 30일 시작했지만 대부분 기존 언론에 보도된 문제점을 재차 언급하는 데 그쳤다.

한국해운조합이 운항관리자가 허위로 보고한 세월호 과적 내용을 국회에도 그대로 보고하거나, 특위 야당 위원이 요구한 청와대 관련 자료 269건 가운데 기관보고가 끝나기 3일 전까지도 13건밖에 도착하지 않아 야당이 기자회견을 통해 분통을 터뜨리는 등 부실한 자료제출 관행도 여전했다.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를 낸 MBC는 기관보고에 아예 불참했다.

청문회 증인 채택 여부를 놓고서는 아예 특위가 멈춰섰다. 야당은 청문회에서의 '한 방'으로 만회하려 당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정호성 제1부속실 비서관, 유정복 현 인천시장의 출석을 요구했다. 이에 여당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의 출석으로 맞섰다. 특위가 전형적으로 정쟁화된 것이다. 8월 4일부터 열리기로 한 청문회는 무산됐고,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교착화되면서 2차 국조 실시도 물 건너갔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의혹 제기는 국민 여론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지 몰라도 상대하는 입장에서 '물타기' 정도의 반대 의혹만 제기하면 되니까 대응하기가 훨씬 쉬운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해외자원외교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국회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또한 여당이 주장한 공무원연금 개혁 특별위원회와 맞바꿔 지난 1월 출범했지만 불안한 출발은 세월호 국조 특위와 다르지 않았다. 여야는 △국정조사 대상 및 시기 △기관보고 증인 출석 △청문회 증인 출석을 두고 석달 내내 파행을 거듭했다.

자원외교 국조특위가 기관보고 중에 '한 방' 없이 겉돌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해 이상득 전 의원, 최경환 현 경제부총리이자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 윤상직 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자원외교 핵심 증인 5인 출석에 매달렸다. 새누리당은 당장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정세균 당시 산업부 장관, 임채정 상임고문,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출석을 요구했고 합의는 결렬되고 국조 특위 역시 청문회 없이 끝났다.

특히 자원외교 국조특위는 '용두사미'로 끝나는 한계점을 보였다는 혹평을 받았다. 자원외교 국조 특위 출범 전부터 새정치민주연합은 '빈손 국조'를 우려하며 소속 의원의 특위 차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같이 국정조사가 파행만 거듭하다 빈손으로 끝난 사례는 19대 국회가 처음이 아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정조사가 부활한 13대 국회부터 지난 18대 국회까지 78건의 국정조사 요구가 발의됐지만 이 중 조사활동으로 이어진 경우는 22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조사보고서가 채택된 것은 9건에 불과했다.
1987년 이후 실제 국회가 국정조사에 착수해 완벽하게 마무리한 확률은 10.2%에 그친 것이다.


gogosing@fnnews.com 박소현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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